페이커 (출처 : 나무위키)
제 첫 관람 경기가 2023년 월즈였고, T1이 우승했습니다. 그때 페이커라는 인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됐거든요. 2026년 LCK가 시작되는 지금, 처음을 생각하며 페이커 선수를 분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89개 챔피언, 숫자로 보는 12년의 기록
Leaguepedia 통계에 따르면, 페이커는 2013년부터 2025년까지 프로 경기에서 총 1,600경기 이상 뛰며 89개 챔피언을 사용했습니다.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에 존재하는 챔피언이 약 170개인데, 미드 라이너 한 명이 전체 챔피언의 절반 이상을 프로 무대에서 꺼낸 겁니다. 솔직히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믿기 어려웠습니다. 암살자부터 마법사, 전사, 심지어 서포터 챔피언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챔피언이 거의 없거든요.
LoL Esports 공식 인스타그램은 2025 월즈에서 페이커가 14개의 서로 다른 챔피언을 픽한 것을 두고 'CHAMPION OCEAN(챔피언 오션)'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했습니다. 공식에서 인정한 챔피언 바다입니다. 2025 시즌부터 적용된 피어리스 드래프트는 이 챔피언 풀의 가치를 더욱 높였습니다. 피어리스 드래프트는 한 번 사용한 챔피언을 해당 시리즈에서 다시 쓸 수 없는 방식인데, Split 1에서 처음 도입된 뒤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 나머지 시즌과 월즈까지 확대 적용됐거든요. 메타 챔피언 서너 개만 잘하는 선수는 시리즈 후반에 약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페이커처럼 깊고 넓은 풀을 가진 선수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환경이 된 겁니다.
애니비아와 멜 – 예측 불가능한 카드가 무기가 되는 이유
2025 월즈에서 T1 팬들에게 가장 짜릿했던 순간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챔피언이 등장했을 때였습니다. 특히 애니비아 픽이 인상적이었는데, 리그 경기에서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카드였거든요. 그런데 월즈 메인 이벤트에서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페이커가 뭘 꺼낼지 예측이 불가능해지는 거고, 그게 서브 옵션이 아니라 실제로 경기를 지배하는 수준으로 나오니까 더 무서운 겁니다. 애니비아의 벽 스킬을 활용한 지형 통제는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멜도 월즈에서 페이커가 보여준 깜짝 카드였습니다. 새로 출시된 챔피언을 국제전 무대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적응력과 챔피언 이해도의 증거거든요. 저는 이런 깜짝 픽이 나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리스크가 있는 선택인데 페이커가 꺼내면 왠지 믿음이 가고, 실제로 결과도 좋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게 12년 동안 쌓아온 신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케리아가 페이커에 대해 "옛날 사람이라 옛날 챔피언 잘한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게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은 아닙니다. 페이커는 애니비아, 라이즈, 오리아나 같은 클래식 챔피언들을 현대 메타에 맞게 재해석해서 씁니다. 요즘 신인 선수들이 잘 연습하지 않는 픽들인데, 페이커에게는 그게 오히려 무기가 되는 거거든요. 제가 보기엔 이게 신인들이 따라가기 가장 어려운 영역입니다. 현재 메타 챔피언 몇 개를 완벽하게 연마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수십 개의 챔피언을 프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선수는 정말 드뭅니다.
선수를 넘어 밴픽 설계의 중심이 된 존재
2026년에 공개된 T1 영상들을 보면, 페이커가 단순히 경기를 뛰는 선수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밴픽 관련 영상에서 코칭 스태프, 감독진과 함께 전략을 설계하고 논의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거든요. 자기 챔피언 선택뿐 아니라 팀 전체의 밴픽 방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월즈 밴픽 보이스 영상에서 문도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며 팀을 설득하는 장면이 공개됐을 때, 작년에 그 영상을 새벽에 보면서 "아, 이 사람은 진짜 코치 겸 선수구나" 싶었거든요.
이런 역할이 가능한 건 12년 넘는 커리어에서 쌓은 경험 때문입니다. 수많은 메타 변화를 겪었고, 다양한 상대와 맞붙으면서 쌓은 지식은 어떤 코칭 스태프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LoL Esports에서 Hall of Legends 첫 번째 헌액자로 페이커를 선정하면서 "12년 이상의 헌신"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통산 월즈 6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대단하지만,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성과를 이룬 후에도 여전히 현역 최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T1 팬으로서 페이커가 뛰는 경기를 볼 때마다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오래 최고의 자리를 지키면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는 e스포츠 역사상 다시 나오기 힘들 것 같거든요. 89개 챔피언, 6번의 월즈 우승, 밴픽 설계의 중심. 2026년에 그가 어떤 챔피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