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 주부터 경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플옵 경기들을 리뷰하자니 여러모도 레전드급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아득한 옛날 같은데... 차라리 꿈이었길 바라는 DNS와 BFX의 경기. 그때 5세트때 DNS가 이겼더라면 어제 T1경기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다시 플옵 경기들을 리뷰하면서 제 생각과 분석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 BFX vs DNS 플옵 1라운드 (출처 : LCK공식 유튜브) |
전문가 13명 전원이 피어엑스 승리를 예측했고, 장로 그룹 1위 피어엑스가 직접 DNS를 지목한 대진이었습니다. 저는 DNS에서 피터를, BFX에서는 디아블을 응원하는 입장이라 누가 이기든 재밌는 경기만 보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경기는 진짜 미친 듯이 재밌었습니다. 다만 끝나고 이렇게까지 억울할 줄은 몰랐습니다.
1세트 덕담 펜타킬, 그리고 2~3세트 랩터의 반격
1세트 DNS는 완전히 다른 팀이었습니다. 두두의 엠바사가 라인전을 압도했고, 녹턴-오리아나 궁극기 연계로 에이스를 만들어낸 뒤 바론까지 사냥했습니다. 마무리는 덕담의 유나라 펜타킬. 솔직히 이때만 해도 "DNS 3:0 가는 거 아니야?" 싶었습니다.
근데 피어엑스는 안 무너졌습니다. 2세트에서 랩터의 리 신이 트리플 킬을 터뜨리며 판을 뒤집었고, 시비르-카르마의 후반 밸류가 폭발하면서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3세트도 전령 한타 대승에서 바론까지 이어지는 깔끔한 흐름으로 25분 마무리. 지금 돌이켜보면 랩터가 MVP를 받은 게 당연했습니다. T1전에서도 결국 랩터가 캐리했으니까요.
4세트 – 두두의 자헨, 이건 거의 혼자 한 겁니다
그런데 DNS에게는 두두가 있었습니다. 4세트 두두의 자헨은 말 그대로 혼자 팀을 들고 뛴 수준이었습니다. 렉사이 상대로 솔킬을 따내고, 1차 타워를 혼자 밀고, 유충까지 챙기면서 탑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보면서 떠올린 게 작년 KT에서 BDD가 거의 혼자 업어서 끌고 가던 그 느낌이었거든요. 5명이 하는 게임에서 한 명이 이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닙니다. 결국 두두의 자헨이 BFX 4인을 정리하면서 2:2 동점. 승부는 5세트로 넘어갔습니다.
| 레전드 5세트 경기 (출처 : LCK 공식 유튜브) |
5세트 – 장로 먹고 에이스 잡고, 그리고 졌습니다
DNS는 잭스-람머스-스몰더-미스 포츈-렐로 후반 스케일링을 노렸고, 피어엑스는 사이온-자크-갈리오-아펠리오스-쓰레쉬로 4탱크 뒤에 아펠리오스 한 명이 딜을 책임지는 구도를 택했습니다.
초반에는 피터의 렐이 퍼스트 블러드를 잡고 람머스 갱킹까지 성공하면서 DNS가 앞서갔습니다. 하지만 랩터의 자크가 바텀을 반복적으로 압박하면서 덕담의 미포 성장에 제동을 걸었고, 피어엑스가 드래곤 3스택을 빠르게 쌓으며 중반 주도권을 가져갔습니다.
그래도 두두의 잭스가 버텨줬습니다. 드래곤 한타에서 잭스가 시간을 끄는 동안 미포 궁극기가 정확하게 꽂히면서 피어엑스를 전멸시켰거든요. 하지만 다음 미드 한타에서 피어엑스가 바론과 인퍼널 소울을 동시에 가져가면서 경기가 다시 기울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장로 드래곤 한타에서 DNS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피어엑스 전원을 쓰러뜨렸습니다. 이때 저는 "끝났다" 싶었고, 팬들 반응도 똑같았습니다. 장로 버프를 들고 본진으로 진격해서 억제기를 부수고 넥서스 타워 앞까지 도달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터졌습니다. 억제기를 깬 시점에서 부활 타이머 확인하고 빠져야 했습니다. 스몰더 조합은 후반으로 갈수록 유리한데, DNS는 흥분한 듯 그대로 넥서스까지 밀어붙였습니다. 피터의 렐이 넥서스 타워 밑에서 무리하게 진입하다 사망한 장면은 솔직히 에바였습니다. 부활한 피어엑스 선수들이 남은 DNS를 정리했고, 이후 바론을 다시 확보한 뒤 대치 중에 클로저의 스몰더를 잡아내면서 경기가 끝났습니다.
실력 때문에 진 게 아니라서 더 아쉽습니다
복기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DNS가 실력 때문에 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장로 먹고 에이스 잡아놓고, 무리하게 끝내려다 역전당한 거거든요. 누가 댓글에 "두두가 다 엎드려서 키보드로 빠따 쳐도 된다"고 했는데 진짜 그 심정이 이해됩니다. 덕담의 미포가 탱크 4명 상대로 콜렉터를 4번째 아이템으로 올린 것도, 클로저의 스몰더가 자크-갈리오 앞에서 너무 앞에 나와 있다가 잡힌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프로는 결국 멘탈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DNS는 아직 탈락한 게 아니고, 19일 패자조에서 DRX를 상대합니다. 두두가 이 시리즈에서 보여준 폼이라면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 아쉬움을 다음 무대에서 풀어주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래도 피터가 포탑에 맞아서 죽은 건... 진짜 에바입니다.
